본 논문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올랜도』의 허구적 서사가 두 작품 뿐 아니라 울프의 전반적인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울프는 두 작품에서 허구적 화자의 진지한 태도와 환상적일 정도로 허구적인 등장인물의 특징들을 부각시킴으로써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 하에서 억눌려온 여성과 왜곡된 그들의 삶에 관한 기록에 대한 문제의식을 장난스럽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드러내고, 나아가 독자가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1장에서는 사실에 충실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언급하는 『자기만의 방』의 허구적 화자를 활용하여 울프가 역설적으로 남성중심적인 이데올로기가 구성하는 ;;사실’이 얼마나 선별적이고 일방적인지 폭로하는 방식을 살펴본다. 여기서의 ;;사실’이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의 일이라는 의미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실과는 다른 것으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 하더라도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왜곡되고 조작되어 진실이 아님에도 마치 진실인 것처럼 공유되는 것을 의미한다. 본고는 이러한 ;;사실’보다 울프가 만들어내는 허구적인 이야기가 오히려 언젠가는 실재할 수 있는 진실을 포괄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2장에서는 『자기만의 방』과 『올랜도』에서 여성 등장인물들이 서술되는 방식에 집중하여 울프가 가부장제에 의해 마치 본질적인 것처럼 규정된 여성성과 남성성의 가치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보여주는 과정을 분석한다. 울프는 당대 사회 속에서 억압된 자들이 예술적으로 자기 자신을 표현해낼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전통적인 성별 구분을 따르지 않는 ;;여성’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점차 ;;여성’으로 성장하는 올랜도를 통해 그 개념을 구체화한다. 당대 사회에서 이름 없이 살아야 했던 여성에게 존재감을 부여하는 ;;여성’이라는 개념은, 백인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마찬가지로 소외될 수 밖에 없었던 계급과 인종의 삶에 관해서도 성찰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3장에서는 앞선 두 장에서 살펴본 ;;사실’과 ;;여성’ 등의 개념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울프가 『올랜도』의 화자를 통해 의도적으로 조명하는 전기적 사실의 불완전함을 들여다보고, 울프가 시도한 새로운 전기적 글쓰기의 효과를 탐구한다. 울프는 허구적 서사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추적함으로써 인물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뿐 아니라 인물과 외부세계와의 긴밀한 관계에까지 접근한다. 또한 울프는 자신이 던져놓은 문제의식들을 독자가 파악하고 함께 소통하기를 원하고 있음을 작품 곳곳에서 암시한다. 이 연구는 울프의 진지한 작품세계에 일관성을 부여하기 위해 아예 무시되거나,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만 논의되곤 했던 두 작품의 허구성을 연결하여 새롭게 조명하는데에 의의를 둔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허구적 서사 안에 담겨있는 상당히 무거운 문제의식들을 진지하게 읽어내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