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D.H. 로렌스의 『연애하는 여인들』(Women in Love, 1920)에 등장하는 구드런과 어슐라 자매가 서로 다른 인식 방법에 따라 대상을 바라보고 있음을 살피고, 이를 통해 소설이 당대 서구의 주류적 대상 인식 방법에 대한 로렌스의 비판 및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구드런과 어슐라의 대상 인식은 각각 시각적인 것과 비시각적인 것으로 나뉠 수 있다. 로렌스는 작품을 통해 이 두 자매들의 인식 방법을 비교·대조하여 자매들의 연애가 어떻게 실패하고 성공하는지를 그 결과로 제시하는 일종의 실험과정을 수행한다.우선 I장에서는 논의를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왜 『연애하는 여인들』을 이해하기 위해 두 자매를 비교하여 보는 것이 중요한가를 설명하고, 로렌스의 인식론에 대한 그간의 연구사를 검토한다. 또한 로렌스의 편지들과 에세이를 중심으로 로렌스의 미학적 사유를 살펴보고, 이에 따라 구드런과 어슐라의 인식론을 구별한다.이어 Ⅱ장에서는 구드런 및 그녀가 대변하는 대상을 지적·의식적으로 파악하는 시선을 다룬다. 구드런은 작품에서 모더니스트 예술가로서 서구 전통의 지적인 시선을 답습하는데, 그녀의 시선은 대상을 정형화할 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모습을 점검하고 재단한다. 구드런은 시각적인 정보를 통해서만 타인을 이해하고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기에 관능을 통한 총체적인 대상 인식을 이끌어내는 것에 실패한다. 일례로 그녀는 시선으로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어둠”에 큰 두려움을 품으며, 타자와의 관계형성에 있어서도 시선이 작용할 수 있는 거리를 언제나 유지해야만 한다. 그녀의 연인 제럴드는 서구 기독교 전통의 빛과 연결되는데, 시선을 통한 인식과정에서 대상의 색을 나타내고 모양이나 형태를 인식시키는 매개가 곧 빛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그 자체로 시각적 인식의 운명을 대변한다. 삶의 본질을 그저 시각에 의존해 바라보기만 하는 관찰자(onlooker)적 인식 방법에서 탈피하지 못한 둘의 사랑은 결국 설산 한 가운데에서 파멸을 맞는 제럴드의 죽음으로 좌절된다.III 장에서는 구드런의 시선과 대비되는, 특히 촉각과 접촉을 중점으로 어슐라의 비시각적 대상 인식을 다룬다. 어슐라는 육체성의 중요함을 인지하는 삶의 관여자(partaker)로서 로렌스의 직관적 인식론을 실천한다. 그녀는 내면의 눈을 통해 대상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로렌스가 주장하는 ;;뿌리 시각”을 지닌 인물이다. 그녀는 대상을 지식적으로 소비하고 정형화하는 대신 인식을 공감각적으로 확장시키며 종반에는 대상에 가까이 다가가 접촉한다. 구드런과는 달리 그녀는 ;;어둠”에 익숙한데, 작품에서 어둠은 서로 다른 것들 간의 경계를 허물어 만물을 접하고 품을 수 있는 커다란 용기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어슐라는 지식과 논리에 기반 하여 대상을 바라보려는 정신적 인식 방법과 본능적이고도 감각적인 인식 방법 사이에서 크게 고뇌하는 연인 버킨을 본능적 직관의 영역으로 끌어내며 함께 충만한 관계를 형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