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진행된 본인의 <가족 시리즈> 작품들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가족에 의해 형성된 한 개인의 트라우마가 작업으로 승화되며 해갈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가족은 따뜻함, 위안, 안락함 등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지만, 현실에서의 가족 관계는 훨씬 복잡하고 다면적이다. 가족은 혈연을 기본으로 한 1차적이고 사적이며 정서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지만, 또한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서 그 사회가 요구하는 공적인 역할 역시 수행해야 하는 모순적인 성격을 지닌다. 또한 가족 구성원들의 지위는 자의로 바꾸기가 어렵기 때문에, 문제 발생시 무조건적인 상호 수용이 합리적인 논리보다 우선한다. 따라서 가족 내 갈등은 그 문제의 근원을 떠나 개인적이고 감정적으로 해소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며, 또한 구성원들의 관계에 대한 감정적인 상처로 남기 쉽다. <가족 시리즈>는 나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결혼 직후, 새로운 가족 내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전혀 다른 가족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닫고, 그 이전에 피해의식이나 애정결핍 등 가족으로 인한 나의 오래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작업은 자연히 상처에 대한 ;;치유’와 면밀하게 이어져 있고, 작품의 형식은 그 내용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또한 작품 발전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였다. 이러한 치유의 과정은 몇 가지 단계를 거쳤는데, 가장 먼저 선행되었던 것은 이 트라우마로 인한 본능적인 공포를 제거하는 과정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본인이 공포를 느끼는 특정한 조형 요소를 작품에서 의식적•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택했고, 이는 그 요소들에 대해 익숙해짐에 따라 이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의 ;;역치(易置)’를 올리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에는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표출하는 과정이 수반되었는데, 이는 나의 가족의 초상을 제작하고 또 트라우마가 형성된 이야기들을 텍스트를 중심으로 재구성하면서 진행되었다. 이렇듯 분노, 슬픔, 연민 등 가족들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작품을 통해 어느 정도 해갈되고 난 이후에는 ;;승화’의 과정이 뒤따랐는데, 이 과정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나의 가족을 작품 속에서 객관화하고 나아가 희화화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또한 앞의 두 단계에서의 작업을 전시하면서, 관객과의 교감에 따른 소통과 이에 따른 정서적 유대는 트라우마로 인한 애정결핍과 피해의식을 완화시켜 주었으며, 이는 이후 작업들이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성격으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게 되었다. 가족, 누군가에게는 꿈이며, 누군가에게는 희망이자 위안이고, 누군가에게는 지독한 악몽이기도 하며, 또 누군가에게는 이 모든 것을 합쳐 놓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문제가 없는 가족이 없다’고 할 정도로 복잡하면서 헤어날 수 없는 이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이라는 모순을 지닌 집단은 모두에게 인간관계의 시발이 되는 중요한 지점 중 하나일 것이다. 나에게 가족에 의한 트라우마는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정서적으로 깊은 흔적을 남겼지만, 또한 이를 원동력으로 자아를 성장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따라서 이 연구가 <가족 시리즈>를 총체적으로 정리하는 계기가 됨은 물론, 유사한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